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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다림이란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시계추
수 유부 광형 정 길 리섭대천 - 需  有孚 光亨 貞 吉 利涉大川

< 기다림이란 자신을 믿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며 그 빛을 내기 위해서는 힘차야 한다. 인내하고 노력하면 마지막에 가서야 성취하며 끝없는 도전이 필요하다.>

기다림, 우리 일생에서 중요하고 중한 말이지만 기다림의 고통은 크고 큰 스트레스이다. 때를 기다린다. 님이 오길 기다린다. 농부가 씨를 뿌린 후 비가오길 기다리는 것 이 모두가 기다림의 상징이다. 주역에서는 기다림에는 믿음을 제일 먼저 제일 중요하게 가르쳤다.

나의 기다림은 절대로 성취 할 것이라는 자신을 믿는 마음 그걸 크게 강조 하였다. 그리고 나의 일이 만인 의 빛이 되고 나는 힘차고 힘차게 나아 갈 것이라는 자신의 맹세를 두 번째로 가르쳤다. 세 번째는 인내하여 마지막까지 서둘지 않고 침착하게 때를 맞이하라는 것이다.

기다림에는 믿음과 신념 그리고 인내의 삼박자를 주역을 주장하여 우리 곁에 두게 하였다. 기다림에는 가만히 앉아서 쉬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변화와 정열의 공부 그리고 도전정신을 같이 하라고 가르친다. 나의 젊은 시절 역학자의 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 이다.

그때의 나의 나이 이십대 말기이다. 젊고 여린 놈의 팔자에 누가 그를 그렇게 시켯는지는 몰라도 호 왈 운명감정소라는 문을 열고 도시의 변두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손님도 없고 전화도 없다.

점쟁이가 손님 오길 기다리는 것도 기다림인가? 허허 정말 안타까운 옛날이야기요, 한심한 젊은이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집에는 돈이라고 한 푼 없고 30도 안된 놈의 슬하에는 나이든 어머님과 줄줄이 동생 셋에 딸이 둘이다. 손님이라도 와야 저녁거리도 사고 하루를 질 낼 수 있는 장막인데 말이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학생운동도 하고 교수님의 사랑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먼 꿈의 나라 때의 옛이야기 일 뿐이다. 그때에 전화가 왔다.


“어이 친구 내 형님한테 너의 이야길 하니 가보려고 한다. 보낼 터이니 잘 봐 주게.”

내 사정이 얼마나 딱했던지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러니 자기 형님을 보낸다 한다. 전화로 형님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묻고 싶었으나 입에서 말이 떨어지질 안했다. 오후가 되니 키기 크고 말쑥한 30대 중반의 남자가 찾아 왔다. 나를 보면서 싱긋히 웃는 모습이 젊은 놈이 무얼 안다고? 하는 표정이다.

그래도 나는 기가 죽을 수 없었다. 침착하게 생년월일을 묻고 조용히 받아 적었다. 나는 첫 말이

“선생께서 큰 운이 와서  엄청 큰돈을 얻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싫치는 않은 모습이지만 알고자 하는 핀트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친구의 형님은 부산대 출신으로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다녔는데 회사가 어려워 부도가 날 지경이다. 그게 불안하여 찾아 왔는데 얼도 당도 않게 큰 부자가 된다고 하였으니 정말 서투런 점쟁이의 감정이다.

그래도 나는 부자가 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친구형님 포켓에서 쌀 두어 되 값을 벌었다. 그리고 두 달 반쯤 지났는데 친구의 형님이 찾아왔다.


“선생! 내가 부자가 된다고 했는데 부자커녕 회사가 망해서 실업자가 되었소.”

하면서 자신도 기가 차는지 웃는다. 그리고는 언제 취직이 될 련지를 묻는다. 나는 세옹지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직설적인 이야기를 피하고 잘 될 것이라는 격려를 돼 풀이 하였다. 그는 나가면서


“내가 부자가 되면 내 재산을 절반 주겠소.”

하면서 헤어졌다. 그때부터 친구의 형님은 취직도 못하고 약 육개월을 실업자로 지냈다. 간혹 찾아오시면 같이 짜장면도 시켜먹고 하여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남포동 거리를 지나는데 대학 동창생을 만났다. 그는 대기업에 취업해서 영업부 대리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신상품을 개발하여 시장조사를 하라고 시켰고 대리점을 할 사람도 알아보라고 하여 부산에 왔다가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둘은 왜식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반주를 곁들이면서 지난이야기 현재의 상황을 서로 주고받다가 친구가 제안을 했다.


“지금 우리회사에서 신상품을 개발하여 출시 예정인데 자네가 한번 대리점 해보지 않겠나?”

하면서 권한다. 지금 같으면 대기업에서 작어만한 상품을 만들어도 서로 팔겠다고 야단이지만 약 30년 전에는 대리점을 할 사람도 영업을 해서 구했다. 그 만큼 경제의 규모가 약했던 모양이다. 친구의 형님은


“내가 돈이 있어야지”

하면서 한발 뒤로 물렸다. 친구는 집요하게


“그러면 어디에서 담보물이라도 구해보라"
 
하였다 그러면 회사에서 대리점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한다. 그 이후 누님의 집을 담보로 부산 경남 제주도 대리점을 개설하였다. 그때 우리나라의 경제가 급격히 성장하여 엄청스런 호경기를 맞이하였다. 친구의 형님은 매일 점주들로부터 주문이 쇄도 하였고 돈 버는 냄새가 내사무실로도 퍼질 정도다.

그때 형님의 친구 중에 문제가 많은 이가 형님에게 접근하여 대구의 좋은 땅이 있다하여 중계를 하여 약 2000평의 토지를 구입하였다. 그러나 너무 바빠서 현장을 가보지도 않고 땅을 사 들인 것이다. 그런 좋은 경기를 약 이년 지내고 보니 제법 부자의 반열에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모 건설회사에서 대구에 있는 돌산의 돌을 팔아 라고 전화가 왔다. 친구의 형님은 나는 돌산이 없는데 하면서 지난 이년 전에 친구의 소개로 구입한 땅이 생각나서 현장에 가보니 아무 쓸모없는 돌로 가득 찬 야산이다. 지금 같으면 환경문제로 돌을 채취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르겠지만 당시에는 별로 문제가 없었다. 운이 좋으니 친구에게 사기당한 땅에서 돌을 팔아 이득을 그리고 돌을 걷어내니 아주 좋은 택지가 생기는 행운도 얻었다. 재물의 신이 끝까지 도와주는 모양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나는 옛날에 부자가 되면 재산의 반을 주겠다는 약속도 생각이 나서 불시에 친구의 형님을 찾았다. 반갑게 맞이하기는 하였으나 별로 반기는 눈치는 아니다.

그리고 저녁을 얻어먹고 봉투를 내밀어 받아 보니 돈 일십만원짜리 수표 한 장이다. 나는 돌아오면서 반을 준다 해놓고는 하는 말을 중얼거리며 돌아왔다. 사실 그는 약 육 개월의 기다림이 현재의 때를 맞이한 것이다. 믿음과 나의 뜻을 피력하겠다는 신념 그리고 침착한 운의 맞이함, 그리고 끊임없는 경영의 공부가 그의 시대를 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재산의 반은 내 것인 대“ 하는 지나간 약속을 지금도 중얼거리는 못난 역학자의 외침을 오늘도 스스로에게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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