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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神)들의 전쟁
 

용전우야 기혈현황(龍戰于野 其血玄黃)


황룡과 흑용이 들판에서 싸우다 흑용은 검은 피를 황룡은 누른 피를 흘리며 쓸어 질 것이다.


세상 파장의 마지막 단계가 신들의 전쟁이다. 황룡과 흑룡이 세계를 무대를 하고 싸우니 황룡은 누런 피로 흑용은 검은 피를 흘리며 들판에 쓸어 질 것이다. 주역에서 종교전쟁을 예언 한 장이다. 중동전쟁, 아프카니스탄, 911테러, 이락크에 미군진주 끝없는 전쟁이다. 이념이나 영토의 분쟁보다는 이스람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전쟁이다. 하나는 사막의 황색용이며 하나는 요단강의 물의 종교이다.


원줄기는 같지만 마호멧트는 오직 나만이 신의 아들이며 마지막 예언자라 하여 예수님을 인정치 않는다. 흑룡과 황룡은 그 싸움이 끝이 없고 흑룡은 검은 피를 흘리고 황룡은 누런 피를 흘리고 들판에 쓰러 질 것이라고 주역은 예견한다.


오호 신이여!

이들의 전쟁을 막을 길이 없습니까?  이들이 서로 화해하고 공존하는 길은 없습니까?  인간이 많든 무기로 죽음과 부상으로 고통 받는 일이 신이 시킨 일입니까? 이로서 인류멸망의 길을 재촉하는 것입니까?


“떼거리” 문화

나는 메스컴에서 부동산에 관한 보도를 들을 때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 때가 많았다. 특히 부산은 산과 바다로 이루어 져 있고 대부분의 바닷가 평지는 매립지이다. 특히 자갈치, 부두, 해운대 센텀지구 등이 대표적인 장소이다. 도시의 생긴 모습이 길고 좁아서 교통사정이 어렵다. 아무리 우회도로를 내고 싶어도 용지가 없다. 그중 제일 교통이 어려운 곳이 해운대일 것이다. 관광객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해운대를 넘어서면 송정 일광 기장지역이다. 이곳에 주민이 많이 살아서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의 교통사정은 불보는 것과 같이 보이는 것이 이곳의 어려운 주거 환경이다. 그래도 아파트나 주거의 가격이 제일 높다.


또 하나는 동북아시아의 세 개의 나라가 있다. 중국 일본 한국일 것이다. 일본은 예수교가 수입 된지 무척이나 오래된 나라이다. 임진왜란 때에 가등청정이 자기 휘하 장수와 술 마시며 이야기 중에 술을 먹지 않는 부하를 보고 “예수쟁이”라는 놀림을 하는 구절을 어느 소설에서 본 것 같다. 그렇게 오래전에 그리스도교가 전파 되어도 전인구의 3%미만의 교도를 가졌을 뿐이다. 중국은 더욱 심하다. 중국은 자신의 나라가 천하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어떤 종교가 들어 와도 자신들 조상의 사상과 혼합되어야 그들은 믿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전래되어온 불교는 인도 불교가 아닌 중국 불교이다. 이와 같이 다른 나라에는 그들의 자주성이 강한데 우리는 어떤 부자가, 아니 대통령이, 어디에 살고 어떤 종교를 믿으면 모두 따라가는 떼거리 문화는 어찌되어 이렇게 극성을 부리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총리의 편향된 종교를 바로 잡는 발표를 보고 무척이나 마음이 아팟다. 대통령이 믿는 종교의 푸레미엄을 없애라는 이야기가 총리의 발표내용의 핵심이다. 우리의 지도자는 어떤 종교의 교도들도, 아니 무속인도 이해하고 그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 책무이다. 작금의 촛불시위가 팽배해지고 국민의 민심이 위탈되고 믿음이 없어지는 것이 이때문은 아닐 지라도 작은 기여는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신학교를 졸업한 목사가 일 년에 이만 육천명 정도 배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약 10%이상이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택시운전을 한다고 한다. 그래도 종교의 자유를 가진 나라에서 무슨 문제이냐 하겠지만 불균형이라는 문제가 걱정이 된다. 그리고 어떤 개신교는 절대로 타 종교를 인정치 않는다. 아니 아주 불결한 마귀로 보는 경향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 스콜라주의 철학서는 읽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읽는 책도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아들이 니체를 읽다가 된통 혼나는 것을 보고 나는 아연한 적이 있었다. 우리의 젊은이는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을 쌓아야 할 것이다. 이를 권하고 이끌어야 하는 일이 우리의 의무인 것이다.


나는 지리산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틈만 있으면 지리산을 자주 찾았다. 그중에서도 청학동을 자주 갔다. 도인 중 총무할아버지를 만나는 일은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지리산 청학동으로 올라가는 길은 예전에는 무척 험했다. 특히 백암 동천을 지날 때에는 작은 미니버스에서 모두 내리고 걸어서 차를 따라 넘기도 하였다.


백암 동천(白岩 同天)은 그 지역의 바위가 모두 희다. 하얀 바위가 이루고 있는 모습이 하늘나라와 같다고 해서 지워진 이름이다. 백암 동천의 중앙에는 천연 동굴이 있다. 어떤 무속인이 동굴 안에 산신모양을 한 석고상을 안치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 석고 산신상을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면 또 사다 놓고 또 부서지고 이런 반복을 내가 알기도 수번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큰 돌로 조각하여 부서지지 않을 정도의 모습을 갖추어 놓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산조각상에 붉은 페인트를 부어 형체를 알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나는 이곳은 무척 큰 재앙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발길을 멈추고 오래 동안 가질 않았다. 그 해 칠월 장마 때에 휴가 와서 백암동천에서 야영하던 사람들 일곱 명이 물에 힙 쓸려 죽었다. 나는 이후에 그 장소를 찾아서 홀로 외롭게 외쳤다.


오호~ 이것이 산이 준 재앙입니까? 왜 그렇게 타인의 믿음을 저주하십니까? 그래서 일어나는 것이 전쟁과 테러일 뿐일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종교가 자랑스럽다면 깊은 신학의 공부를 해보시지요. 그냥 들은 설교에 현혹되어 진리를 왜곡하시지는 않는지요. 우리의 “떼 그리 문화”는 언제 없어 질 것인지요. 하며 충혈 된 눈으로 지리산 자락을 응시하였다.


주역은

리영정  利永貞


리의 시절에서 정의 시절까지는 길고 길 것이다. 발달된 문명의 시절에서 멸망의 시절까지는 영원할 것이다. 신의 전쟁은 전쟁을 일으키는 그들만이 피를 흘리며 쓸어 질 뿐 세상은 많은 민족을 이끌고 삶을 진행해 갈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용전우야(龍戰于野) - 용이 들판에서 전쟁을 일으킨다. 용은 신을 나타내며 우야는 세계의 모든 대륙이다. 기혈현황(其血玄黃) 누른 용은 황색피를 검은 용은 검은 피를 흘리며 쓸어 질 것이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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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효님의 댓글

지효 작성일

싸움의 끝은 결국 둘다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것이군요.
상생의 기본은 서로를 인정하는 것인데 신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나봅니다. 하물며 그것을 본받는 인간은 우리 스스로 그것에 면죄부를 부여했습니다. 인두겁을 쓰고 하지 말아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오늘도 자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상생은 아직 멀었나 봅니다.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낸 혼돈의 과학에서 태극에 대한 많은 예가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인류가 스스로 멸망하는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끝에서도 반드시 새로운 살려짐의 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날 때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초아 선생님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언제고 부산에 내려가면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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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서대원님의 댓글

초아 서대원 작성일

지효선생!
이번 칼럼이 조금 과격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잘 흥분하는 편인가 봅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젊은이들은 많은 철학서를 읽고 풍부한 지식을 가지며 자신의 사상을 스스로 적립하는 걸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젊었을 때 스피노자를 읽고 이틀을 꼬박 센적이 있습니다.
종교는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용서 하지 않습니다.
타인을 타종교를 인정해주는 미덕이 생길 때 용들의 전쟁이 멈추어 질 것입니다.
우리가 무속이라고 칭하는 우리의 토속 종교도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우리의 욕망의 분출입니다.
단지 그들은 교리와 교단이 없고 행동이 자유분망하고 질서가 없으며 봉사의 근본이 없어서 세인의 질책을 받지요.

자주 들어와 이렇게 글꼴의 대화를 해봅시다.
고맙습니다. - 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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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님의 댓글

정암 작성일

전쟁이라는 주제는 너무 어렵습니다.^^

초아선생님은 항상 정의감에 불타는 것 같습니다. 마치 젊은피가 항쟁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젊게 사시네요. 멋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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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옹님의 댓글

전옹 작성일

龍戰于野 其血玄黃
이 대목에서 저는
진과 한의 교체기가 떠올랐습니다만
제가 들은바로는 진이 水 즉, 黑이고
한은 黃을 주체로 삼았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진한 교체기의 혼란함을 빗댄것이 아닐까 이해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약 200년경일 겁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선생님의 종교전쟁 이야기는
너무 먼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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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서대원님의 댓글

초아 서대원 작성일

"아마 그대는 예수님의 제자 크리스찬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도 대학시절에는 신학교를 3년이나 다닌 계신교 종통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자의 제일 결점은
타종교, 또는 반 스콜라철학에 귀를 기우리는 것을 지극히 싫어 하는 것입니다.
용전우야의 구절을 읽으면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이슬람도, 불교도 같이 융합하는 열린 마음이 표교의 일성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타종교인을 마귀로 보는 극렬한 심상에 변화가 필요할 것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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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옹님의 댓글

전옹 작성일

기독교(유대교와 천주교와 이슬람을 모두 포함하는)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저 역시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보시기에, 제가 경계선에 서서 위험한(?) 말을 하는 것이 싫으셨던가 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왕따 당했지요.

기독교 신자들중에도 귀를 열고 계신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단지(저를 포함해서) 앞으로 어찌해야 그 경계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목 말라하고 계시지요.

이 구절에 대한 선생님의 뜻은 십분 이해하지만, 저는
그래도 춘추전국시대와 맞물리는 부분에서 혼란함의 극치를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부터 천 년이상 지나서야 일어날 큰 종교전쟁은 너무 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해해도 선생님이 말씀하시려는 바가
왜곡되지는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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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서대원님의 댓글

초아 서대원 작성일

주역의 진리는 시간을 초월합니다. 그 원리는 깨달음에 이릅니다. 그대는 진리를 성경에서 그리고 철학서에서도 같이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예수님! 우리도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요. 예수님의 아버지를 마나고 싶습니다"라고 졸랐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 너희들의 착한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느니라! 그것이 나의 아버님이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은 神이즉 人間이라는 현재의 신과 인간의 분리된 정설을 뒤집는 구절이지만 현재의 목자는 이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신학은 때로는 성경을 왜곡하기도 하지요.
우린 진리를 위해서는 회의라는 의심이 약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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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님의 댓글

베트남 작성일

제 짧은 지식으로는 주역의 모든 가르침은 일이 이렇게되니 무조건 거기에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피할 지혜를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상황이 신들이 전쟁을 하는 어려운 지경일지라도 군자의 길을 따라 간다면 "무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근한 예로 6.25 전쟁 중에도 다른 곳에 비해 피해를 덜 볼 마을들이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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